지난 11년 동안 홈인스펙터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하자 분쟁 사례들을 상담하고 주택검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하나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고리타분한 옛 격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분쟁 상황에서 이 말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 알면 이기고 모르면 당한다. 그 장면을 나는 수없이 봐왔다.
건축 하자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 하자 상담 카페도 운영하고 상담 전화도 많이 받는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다. 자신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격앙되어 이야기하는데, 내 반응이 생각보다 담담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인데 내가 갑자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그건 빙산의 일각을 발견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집주인들은 눈에 보이는 증상만 보고 놀라서 상담을 요청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증상이 문제의 전부인지, 아니면 더 큰 문제의 일부인지를 먼저 판단한다. 내가 담담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대부분 드러난 문제가 전부인 경우다. 반대로 갑자기 진지해지는 경우는 겉으로 보이는 것 뒤에 더 큰 문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주택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문제가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자 소송이 진행된 뒤에 검사를 의뢰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소송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다. 자신은 분명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법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재판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주택검사를 요청한다. 그런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먼저 주택검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검사 결과를 받아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곁가지 문제만 붙잡고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초에 결과가 뻔한 소송을 괜히 시작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다. 이미 돈과 시간, 에너지를 잔뜩 쏟아부은 뒤에 말이다. 물론 인생 교훈은 돈을 주고 배우는 경우가 많다지만, 그 교육비가 너무 비싼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면사무소에 신고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준비해야 할 서류가 꽤 많았다. 내가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젊은 공무원이 이리저리 안내하면서 일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하라는 것만 했다. 일이 금방 끝났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이고, 그 공무원은 매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이 평생 건축 하자 문제를 얼마나 겪을까. 많아야 몇 번이다. 그것도 몇 년에 한 번씩이다. 서툴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실수 없이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슷한 문제를 계속 다루는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를 먼저 봐야 하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자 분쟁의 핵심은 하나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중대한 하자인지, 아니면 경미한 하자인지 판단하는 것. 이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분쟁의 방향 자체가 잘못 잡힌다. 그 판단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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