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집이 말을 걸었다. 벽이 조용히 갈라졌다. 창문에 습기가 짙게 끼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저 다시 도배를 하고, 창을 닦아 물기를 지웠고, 실리콘으로 떼웠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계절이 오고, 또 다음 계절이 오고, 집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사람이다. 나는 주택하자 감별사, 나는 홈인스펙터다.
내 일은 단순히 집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일이다. 나는 본다. 벽의 균열을, 천장의 변색을, 물이 스며나와 변해버린 마감재들을. 그리고 나는 듣는다. 나무가 갈라지고 밀리는 소리, 단열이 끊긴 곳에서 스며드는 낮은 바람 소리, 바닥을 밟을 때 나는 삐걱거리는 마찰음.
어떤 집에서는 결로가 생겼다. 벽지 가장자리에 검은 얼룩이 퍼졌고,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집주인은 단열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공업체는 단열재를 보강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구석, 닫힌 창, 공기가 머무는 공간. 이 집은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단열이 아니라, 환기였다. 습기가 갇혀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벽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다. 해결책은 벽을 더 두껍게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습기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다른 집에서는 지붕이 샌다고 했다. 지붕을 새로 보수했지만, 몇 달 후 또다시 물이 떨어졌다. 나는 천장을 보았다. 손을 대어 축축함을 확인하고,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살펴보았다. 텅빈 천정 위로 아무도 없는 작은 빈 공간에서 혹시나 남아있는 물자국을 찾고 있었다. 원인은 누수가 아니라, 결로였다. 천정 슬라브에 응결된 물방울이 석고보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가 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집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집은 언제나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벽이 갈라지면 메우고, 결로가 생기면 닦아내고, 바람이 들어오면 문틈을 막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틈은 그대로 남아 있고, 해결되지 않은 습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되돌아온다.
나는 본다. 나무에 남아있는 미세한 물의 흔적을, 천정속 석고보드의 음영이 달라지는 모습을. 나는 듣는다. 집이 말하는 소리를. 집은 언제나 말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본다. 그리고 듣는다. 그것이 내 일이다. 홈인스펙터, 하자주택감별사로서의 일이다. 집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청이 필요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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