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주거하는 공간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공감을 하고 있었던 내용이긴 하지만, 한 인문학 강의에서 소설가 김훈씨가 그런 비슷한 내용의 얘길 한 것을 보곤 좀 놀랐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기사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전달을 하자면
'나의 천정이 남의 방바닥이고, 나의 방바닥이 남의 집 천정인 납작한 평면 가운데에 끼어 살면 마음과 상상력도 납작하게 변하는 등 인간의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 얘기했다. 그래서, 깊이가 없는 주거공간에서 우리 모두 납작해져 있다는 것이다. 납작해진 정신세계라..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얘기이다. 사는 환경에 따라서 사람의 심성은 많이 달라진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나도 한번 쓴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김훈은 소설가인지라 고차원적인 얘길 했지만, 나는 저차원적인 얘기이다.
나는 그때 아파트 욕실의 천정 속에 있는 배관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윗집 화장실 배관이 우리집 화장실 천정 속에 있고, 우리 집 화장실 배관은 아랫집의 화장실 천정속에 들어가 있다. 그 얘긴 윗집 똥오줌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우리 집 똥오줌은 아랫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간다는 얘기다. 똥오줌이 집안으로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플라스틱 파이프 하나와 천정을 가리고 있는 플라스틱 판 하나뿐이다. 도시 아파트 불빛들은 화려하고 대단해 보여도 사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약한 것들에 의존해서 살고 있을 뿐이다.

똥오줌 하니 옛날에 들었던 한 얘기가 생각이 난다. 대충 이런 얘기였다.
똥은 입에서 항문까지 내려가는 통로가 쭉 이어져있고, 그 안에서 필요한 것만 흡수하고 내보내니 엄밀히 말하면 남의 것이라는 것이고, 오줌은 몸 속 세포들에서 쓰고 버리는 것을 내보내는 것이니 내 것이라는 얘기다. 즉, 똥오줌 못가린다는 말은 내 것, 남의 것 구별을 못한다는 뭐 그런 심오한 뜻이 있는 얘기라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보자면 요즘 아파트의 구조는 똥오줌이 안가려지는, 즉 나와 남이 구별이 잘 안되는 거주공간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게 원래 도시의 삶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사회라는 말이 그런 속성을 잘 나타내 준다. 그러니, 그 속에서 남들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것만 챙기려고 하는 삶은 피곤할 수 밖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똥 남의 똥 구별하느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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