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피곤하다. 밖에서도 심지어는 집안에서도.
혼자 좀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멀리 떠나버릴수도 없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까. 도심의 집 속에서도 피곤할 땐 좀 쉴만한 어디 그런 공간이 없을까?
옛날엔 중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40~50년 정도일 땐 청년 다음에 바로 노년이었다. 그런데, 수명이 70~80년이 되어버리자 청년과 노년 사이에 중년이라는 시기가 생겨났다. 이게 좀 골치거리이다. 중년의 제 2의 사춘기의 성격을 띄고 있어서 어딘가에 혼자 쳐박히길 좋아한다.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해 진 것이다.
(내가 산속 통나무 오두막에 쳐박혀 있는 이유는 음~ 중년이기 때문)

2000년대에 들어서 그런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내공간들의 분화가 나타난다. 예전엔 나처럼 산 속으로 쳐박혀 버렸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럴수는 없는 일인지라 집안에 '나 좀 내버려두세요' 하는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게 어웨이룸(away room)이다. 파인홈빌딩에서 보니 2002년에 그에 대한 첫 기사가 나온다.

어웨이룸의 특징은 가족들이 쓰는 거실과 분리된 철저하게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피곤하거나 사람들 꼴 보기 싫을 땐 거기가서 쳐 박혀 있으면 된다. 위의 그림 글에도 나와 있지만 "방해하지 마시요"(Do not disturb)라는 표시를 문 밖에 달아주면 된다.
자기 방에 쳐박히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 방은 곧 현실의 세계이다. 현실을 떠난 느낌이 전혀 안든다. 쳐박히는 것에도 분위기가 필요하다. 아뭏튼 대충 그런 느낌의 공간이 집안에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 비슷한 글을 하나 썼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도 중년 남자들을 위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땐 아파트에 살때라서 진짜 혼자 있고 싶은 공간이 절실했다. 하지만 어디든 마누라나 애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는 공간들뿐이었을때 썻던 글이다. 아파트는 여성에게 맞춰진 실내공간이다.
피곤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겐 충전소와 같은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집 지을 땐 그런 골방같은 작지만 아늑하고 약간은 어두침침해 세상에서 멀리 떠난 것 같은 그런 공간을 하나 마련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항상 집 나와서 멀리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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