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미국 얘기이다.
요즘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어서 소개를 한다. 한 젊은 건축가가 10여년을 운영하던 건축사무소 문을 닫고, 양 키우러 가면서 쓴 글인데 갑론을박 의견들이 많았던 기사이다. 미 주택잡지인 파인홈빌딩에 나온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대학 다닐 때 주택은 젊은 건축가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르코르뷔지에, 미스반데어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중점적으로 배웠다. 그러니 자신들이 만드는 집은 당연히 그 세 사람의 작품들이 모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세 사람에 대해서 배울 때 그들의 대표작들이 거주하는데엔 문제가 있다는 것도 살짝 언급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점도 있다는 정도의 참고할만한 고려사항 정도로 여겨졌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mass와 공간과 형태에 대한 숭고한 이론이었지 현실의 자잘한 것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열이니 누수니 기초니 하는 자잘한 것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맥주 먹고 배 많이 나온 아저씨들이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로 여겼을 뿐이다.
학교를 떠나 세상에 나와 직접 일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건축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집의 모양이 현대 건축의 트렌드에 맞는지 주변 환경과 도시의 모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관심을 가지질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건축비였을 따름이다. 고민을 해서 설계를 하면 학교 다닐때엔 경시했던 배 나온 아저씨들이 건축가가 뭘 몰라서 이런 식으로 설계를 했다고 이렇게 하면 건축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좀 더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고 하면서 고객들을 끌어가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면 내가 설계한 멋진 디자인, 조명, 이미지들은 고객들에겐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가진 돈에 지을 수 있는 그런 집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미 만들어진 자동차들을 사듯이 말이다. 내작품은 실현되지 못했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그러니까 학교다닐때 배웠던 뭔가 예술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불과 소수의 인원만 가능할 것이다. 나머진 그저 만들어 달라는 대로 설계 해 줄 수 밖에 없는 그런 반복적인 일이나 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것이 싫어서 떠난다.
그 다음호에 댓글들이 많았다.
주로 건축가들이 올린 글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니가 생각을 잘못한거야, 고생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등등.. 기억에 남는 것은 똑같은 햄버거를 만들어도 최고의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같은 집을 만들어도 더 좋은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라는 얘기도 있었다. (햄버거는 뭐가 되었든 햄버거다. 스테이크는 되지 못한다.)
글을 쓴 사람은 건축가이니 건축가적인 관점에서 봤겠지만
나로선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 글을 볼 수 밖엔 없었다. 사실 좀 놀랐던 부분은 건축학도들은 그 세 거장의 집에 생긴 하자에 대해선 안 배우는 줄 알았다. 안배웠으니 몰라서 그 사람들 따라 할려고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사람들이 살기 편한 집을 만들려면 하자가 없는 집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기본 상식적인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냥 그런 일도 있구나 하고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 친구들은 집을 도대체 뭘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건축교육의 근본부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 안에서 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집의 디자인만 신경을 쓸 수가 있지?
그나마 저 글이 씌여졌던 시절 미국은 배 나온 아저씨들이 우세했기 때문에 이 친구가 그렸던 현대건축풍의 집들은 많이 안지어지고 전통적인 모양의 집들이 계속 지어졌을 것이다. 모양은 예술적이진 않아도 사는데엔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요즘 우리나라는 좀 걱정이 된다.
건축가들이 주택시장, 특히나 목조주택 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엉뚱한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쪽은 아직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경험많은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없는 분야이다. 거기에 디자인을 중시하는 건축가들이 들어오다보니 디자인은 첨단을 달리지만 디테일은 설계한 사람도 모르고, 시공하는 사람도 모르는, 덕분에 집주인들만 하자에 시달리는 집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난리이다.
왜 건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럼 건축학과는 디자인학과처럼 미대쪽에다 붙여 놔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건축가들이 사람보다 집 모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말이다.
저 글을 쓴 친구가 건축가 일을 접은 것은
근본적으로 건축을 잘못 생각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사람이 생각의 중심이 되었다면 사람들을 편하게 살기 위한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할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최고의 햄버거 말이다.)
하지만, 집을 자신의 예술성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집을 받아들이지 않자 서슴없이 떠나 버린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구현한 작품으로서의 집이 필요했지, 사람들이 사는 집을 지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빨리 떠나길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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