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닐 때 영어 선생님이 이런 얘길 했었다.
미군용 제품들은 대부분 겉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고양이용 먹이 캔엔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강아지용 캔에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미군들중엔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 식으로 표시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안그러면 사람들이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 뻥인줄 알았다. 설마 미국사람이 우리 중학생도 읽는 영어를 못 읽을까?

미국의 집 짓기와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디테일한 시공도면들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좀 모르겠다 싶은 부분들은 대부분 다 어떻게 시공을 하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예를 들어 국내에 출판되어 있는 미국 옆동네 캐나다우드에서 나온 '목조주택시공상세' 같은 책만 봐도 옛날 전화번호부 두께에 달할 정도로 그림으로 가득차 있다. 이것도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들이 영어를 못 읽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렇게 꼼꼼한 사람들인가 궁금했다.

주택하자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그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옛날에 안그랬다고 한다. 옛날엔 그냥 IBC, IRC 코드처럼 그러니까 우리나라 건축시방서처럼 그냥 대충 말로만 써 있었다고 한다. 예컨데 '창문엔 플래슁을 설치한다.' 하는 식의 단순한 문구말이다. 그리고, 또 상당 부분은 '제조사의 시공매뉴얼에 따라 시공을 한다.'는 식의 도대체 뭘 어떻게를 제대로 알 수가 없는 문구들 위주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이 빌더들 대부분이 미국인들이고, 당시에 짓는 집들이 옛날부터 지어오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들이 없던지라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의 주택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영어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이 된데다가 건축재료도 바뀌고 지어지는 집 조차도 옛날과는 다른 방식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겨났다. 갑작스럽게 주택하자 문제가 급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하자문제들을 조사한 원인들중의 하나가 시공법을 제대로 몰라서 생기는 엉터리시공에 의한 것이라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후에 미국정부와 건축업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추진을 해 온 일이 디테일한 시공도면을 만드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누가봐도 알 수 있는 그림을 제공하여 따라하게 만들면 시공하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게 한 40여년전부터 해온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요즘 인터넷만 조금 검색해 봐도 주택시공 디테일도면들이 넘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누가봐도 쉽게 이해가 가능한 그런 그림들 말이다.

우리와는 달리 미국엔 주택의 설계도면들을 파는 회사들이 많다. 다양한 디자인의 집들을 평형별로 설계를 해 놓고 그 도면들을 판다. 인터넷에 올려져있는 수많은 디자인들중에서 하나 고르면 책으로 된 설계도면과 캐드파일 등을 구입할 수가 있다.
그걸 가지고 건축허가를 받고 집을 지으면 된다. 그런 산업이 발달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수십년간 만들어온 디테일한 시공도면들이 엄청나게 축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다보니 우리가 가진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그들은 디테일에 집중을 하다보니 그것들이 쌓여서 집 전체적인 도면을 판매하는 사업까지도 생겨났다. 반면에 우리는 허가방이라는 자조적인 얘기를 할 정도로 외형중심의 기본적인 도면들 밖엔 그리지 않다보니 늘상 그 수준에서 발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이 포함된 설계도면은 책 한권 수준인데 외형만 그려 놓은 것들은 열댓장이면 끝이다. 허가문제만 아니라면 돈주고 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건축사들이 찍어주는 도장에 너무 많은 힘을 실어준 것이 설계능력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국내에서 북미식 목조주택 짓는 사람들은 사실 정보가 넘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콘크리트나 샌드위치 판넬 같은 집들은 찾아 보려고 해도 찾아볼 매뉴얼 같은 것 조차도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된 건축시방서 같은 것 밖엔 구할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그런 건축물들보다 목조주택의 하자문제에 대한 얘기들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은 넘치는 정보들마저도 제대로 활용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집 짓기를 너무 쉽게 보고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다. 정보는 활용하기에 따라 그 효능이 달라진다.
다시 미군용 개 먹이 캔으로 돌아가서...
베트남전때 미군들이 월남군인들에게 미군용 물품들을 대량으로 지원을 할때 개먹이 캔도 들어 있었다고 했다. 영어를 모르는 월남군인들은 개 그림이 그려진 캔을 보고 자신들이 즐겨먹던 개고기로 만든 캔인줄 알았다고 한다. 열심히 먹었다고...
그림도 공통적인 컨센서스가 있는 상태에서 통하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일만 저지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기초교육은 받아야만 하고 시켜야만 한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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