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생각

나만의 휴식공간 작은 통나무 오두막, 중년 남자들에게 고치같은 역할

제프 주택하자문제전문가 2022. 5. 18. 11:47

스티븐 킹의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창이 있는 지하실의 한쪽편에 놓여진 책상이 그의 글쓰기 공간이었던 것 같다. 좀 허름하면서, 글을 쓰는데는 깔끔한 곳보단 허름한 곳이 좋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문을 걸어 닫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만 한다는 얘길 한다. 아침에 그곳에 들어가면 매일 정해 놓은 분량의 글을 채울 때까지는 그곳에서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이외수씨 글쓰는 이야기중엔 그런 것이 있었다. 소설을 쓸 준비가 되면 감옥같은 방안에 들어가서 글 다 쓸데까지는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를 감방안에 가두는 것이다. 밥도 감방처럼 문 아래쪽으로 넣어준다고 했던 것 같다.

 

방식이야 차이가 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같다고 보인다. 글을 쓰기 편한, 생각이 자유롭게 떠오르는 그런 공간이 있는 것이다.

 

내겐 통나무 오두막이 그런 공간이다.

스티븐 킹은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 없는게 더 좋다고 했지만  그건 그 사람 얘기이고 나로선 창밖으로 녹색의 산과가 끔 휙 지나가는 산새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더 좋다. 지붕처마 만들때 쓰이는 시다판자로 만든 책상은 만질 때 마다 부드러운 촉감을 전해주고, 기지개를 펼 때 손에 닿은 통나무 벽체 표면의 까칠함도 기분을 좋게한다. 훌륭한 작가들에겐 나타난다는 뮤즈는 없지만 나만의 상상날개는 펼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너무 이 분위기에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곳에 가면 글쓰기가 쉽지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것 같은 그런 공간에서 의무감에 적는 글들은 아픈 배를 움켜잡고 억지로 밀어내는 변비걸린 사람의 X덩어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통나무 오두막 실내 사진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중년의 시기에 접어들면

남성들에겐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중년은 제 2의 사춘기와 같아서 그간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살아갈 삶들에 대한 인생의 여정을 새로 짜는 그런 중간 정착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얘길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선 고치안에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중년남성들에겐 그런 고치같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런 공간은 화려함 보다는 오히려 단순하고 허름한 공간이 더 제격이다. 깔끔함은 생각마저도 깔끔하게 없애버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선 통나무 오두막 같은 곳에서 한번 생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같은 무딘 사람도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릴 수가 있는 마법의 환경을 만들어 줄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에겐 더 효과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곤충들도 고치는 자신에게 딱 맞는 크기로 짓는다. 변신의 시기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오두막같은 공간들이 작가들의 로망이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